족보상식 자료실 > 전통상식 > 족보상식
족보상식
계촌법
가족호칭
제례
방위도

족보의 유래

족보(族譜)는 옛날 중국에서 제왕연표(帝王年表, 왕실의 계통)를 기술한 것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며, 사가에서 족보를 갖게 된 것은 그 훨씬 뒤인 한나라에 관직 등용을 위한 현량과 제도를 새로 설치하고 후보 인물의 내력과 그 연대의 업적 등을 기록하여 비치한 것이 그 시초가 되는 것이다. 그 후 위나라와 진나라 때를 거쳐서 남북조(남조의 송무제가 건국한 영초 원년(420년)부터 수의 문제가 통일하게 된 개황 9년(589년)까지 남북이 대립하였던 170년간) 시대에 비로소 학문으로서 보학을 연구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도 족보는 역시 고려조가 왕실의 계통을 기록하여 온데서부터 시작된 것인데 대체로 고려 중엽의 의종(毅宗) 때 금관의가 지은 『왕대실록(王代實錄)』 등이 그 효시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고대에는 성을 쓰지 않았는데 신라 말기에 중국의 예를 본받아 귀족 계급에서부터 성을 쓰기 시작하였으며, 이것이 고려 초기에도 계속되다가 11대 문종(文宗, 1047~1082)조에 이르러 성을 쓰지 않는 사람은 과거에 응시하지 못하도록 제도화함에 따라 성씨가 갑자기 많이 생겨난 것으로 추측된다. 성씨는 써도 족보는 기술하지 않다가 족보를 체계화한 것은 조선 성종(成宗)조의 초기 때 일이고, 우리나라 최초로 발간된 족보는 세종 5년 계묘(서기 1423년)년에 발간한 문화류씨(文化柳氏) 영락보(永樂譜, 구월산 대승공묘하 재실에 보존)인데 서문만 전할뿐 현존하지 않고, 그 다음으로 성종 7년(서기 1476년)에 발간된 안동권씨(安東權氏) 성화보(成化譜)로써 현재 서울대학도서관 규장각에 희귀고본으로 진장되어 있고, 그 후 명종 임술(서기 1562년)년에 발행된 문화류씨 가정보(嘉靖譜)는 내외 자손이 상세히 기록되어 현존하고 있다. 같은 성씨가 합(대)동보를 편찬·간행한 것은 조선에서도 후기에 속한다. 따라서 특별한 가계(왕족 등) 이외에는 일천년 내외 이전의 보계를 기록으로 보존하여 왔다고 하는 것은 믿기 어려운 일이라 하겠다.

보첩의 기원

족보제도는 어느 나라든지 있는 것이며, 없는 나라는 거의 없다 하겠다. 보첩(譜牒)은 원래 중국의 육조(오, 동진, 송, 제, 양, 진)시대부터 시작되었으며, 특히 북송의 대문장가인 삼소(三蘇, 소순(蘇洵, 노천(老泉))과 그의 아들인 식(軾, 동파(東坡)), 철(轍, 낙성(樂城)) 형제)에 의하여 편찬된 족보는 그 편제와 규모가 매우 우수함으로써 그후부터 족보를 편찬하는 사람은 대개 이를 표본으로 삼았기 때문에 소보(蘇譜)라는 말까지 전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역대왕실에 세보(世譜)가 있었을 뿐이며, 사대부의 집에는 겨우 가승(家乘)이 전해져 오다가 15세기 중엽 성종 때에 와서야 족보가 처음으로 발간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것은 이른바 양반(兩班)의 자손이라야 벼슬길에 오를 수 있도록 제도상으로 규제되어 있었기 때문에 자기 선조의 현달(顯達, 벼슬·명성·덕망이 높아서 이름이 세상에 드러남)을 표현하기 위하여 족보를 만들고 선조의 혜택을 입기 위해서, 또는 조상의 출세를 자랑하기 위해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보첩은 한 종족(宗族)의 역사이며, 혈통을 실증하는 귀중한 문헌으로써 이는 동족의 여부와 소목(昭穆, 종묘나 사당에 조상의 신주를 모시는 차례)의 서열 및 촌수분별에 지극히 필요하거니와 우리의 역사는 우리가 태어나서 고고(呱呱, 아이가 세상에 나오면서 처음 우는 울음소리)의 소리를 외치는 때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의 태고적 선조 때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이 보첩은 앞으로 자기의 선조와 자신의 역사를 후세에 전함으로써 후손들로 하여금 귀감이 되게 하며 그들로 하여금 자기 집안의 역사를 알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더욱 필요하다.

족보는 대개 20년 또는 30년을 단위로 수정·증보하여 간행하는 것이 통례이다. 족보를 새로 간행할 때에는 문중 회의를 열어 족보편수 방침을 결정하고 이를 각 파에 통지하거나 신문지 상에 공고하여 각 파의 자손들로부터 단자를 거두어들이는데 이를 수단(收單)이라고 한다. 단자에는 그 사람의 파계와 생졸·학력·직업·혼인관계, 사위·외손 등을 적어 보내면 이를 취합해서 족보를 편찬하게 되는데 소요 비용은 종중(또는 문중)의 예산 외에 단금을 받아 사용하는데 예를 들면 관(성인)은 20,000원, 동(미성년)은 10,000원 하는 등으로 일정한 수단료를 정하여 거두는 것이 통례이며, 이것을 명하전 또는 수단금이라 한다. 과거에는 족보에 남자만 등재하였지만(그래서 미혼의 딸은 등재하지 않고 딸이 혼인한 경우 사위를 등재하였음) 현대에는 딸도 아들과 같이 등재하며, 외손의 내용도 상세하게 등재하는 추세이다.

보첩의 종류

보첩(譜牒)의 종류로는 족보(族譜), 대동보(大同譜), 파보(派譜), 세보(世譜), 가승(家乘), 계보(系譜), 가보(家譜), 가첩(家牒), 만성대동보(萬姓大同譜) 등이 있다.

1. 대동보와 파보는 어떻게 다른가?
우리나라의 족보에는 대동보와 파보의 구별이 있다. 대동보는 시조 이하 동계혈족의 원류와 그 자손 전체의 분파 관계를 기록한 계통록(系統錄)이며, 파보는 그 각 분파의 자손을 기록한 족보이다. 후손이 적은 씨족은 대동보 하나만으로도 충분하지만 후손이 번성하여 파계가 복잡한 씨족은 파별로 족보를 따로 만들고 대동보에는 분파된 시말과 그 계통만을 밝혀 놓는다. 흔히 동성동본이면서 혈족 계통을 달리하거나 또는 서로 계통을 못대어서 계대(繼代)할 수 없는 경우에는 족보를 따로 만드는데 이 경우의 족보란 파보를 의미한다.

2. 가승
가승은 자기를 중심으로 해서 편찬하되 시조로부터 시작하여 자기의 직계존속과 직계비속에 이르기까지의 명휘자(名諱字)와 사적(事蹟)을 기록한 것으로써 보첩을 편찬함에 있어 그 기본이 되는 문헌이다. 어떠한 집안은 중시조로부터 시작하기도 하며, 또는 한 부분만을 기록하기도 하는 데 사적을 기록하는 그것을 방주 또는 방서라고 말한다.

3. 파보
파보는 시조로부터 시작하여 어느 한 파속만의 명휘자와 사적(방서)을 수록한 보첩이다.

4. 세보
세보는 한 종파 이상이 동보(합보)로 편찬되었거나 어느 한 파속만이 수록되었을 경우라도 파보라는 문구를 피하기 위하여 세보라고 표현하는 수도 있으며, 세지라는 말도 이와 같은 것이다.

5. 계보
계보는 한 가문의 혈통관계를 표시하기 위하여 명휘자만을 계통적으로 나타낸 도표로써 종족전체가 수록되었거나 어느 한 부분이 표시되었다 할지라도 이는 계보에 속하는 것이다.

6. 족보
족보는 관향의 단위로 같은 씨족의 세계를 수록한 보첩으로써 한 가문의 역사를 표시하고 가계의 연속을 실증한 것이다. 또 족보라는 말은 모든 보첩의 대명사 같이 쓰여지기도 한다.

7. 대동보
대동보란 같은 비조(鼻祖) 밑의 중시조마다 각각 다른 본(本貫)을 가지고 있는 씨족 간에 동보로 종합 편찬된 족보를 일컫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본은 각기 다르되 비시(鼻始)가 같은 여러 종족이 함께 통합해서 동보하였을 경우에 이를 대동보라 한다.

8. 가보·가첩
이것은 그 편찬된 내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집안에 소장되어 있는 가승을 말하는 것이다.

9. 만성보
만성보 또는 만성대동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이름 그대로 모든 성씨의 족보에서 큰 줄기를 추려내어 집성한 책으로 족보의 사전 구실을 하는 것이다. 족보를 참고하고자 할 때 각 성씨의 족보를 일일이 찾아 볼 수 없으므로 그것을 종합적으로 요약, 정리한 이 책이 많은 참고가 된다. 현재 가장 널리 참고되고 있는 것으로는 민형식편(閔衡植編)(1925)과 윤식구편(尹植求編)(1931)의 만성대동보가 있다.

족보 찾는 법

족보 편수(編修) 방법이 너무 까다롭고 복잡하여 이를 보려 해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족보에서 자신을 찾는 방법을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1. 족보에서 '나'를 찾으려면 '내'가 어느 파에 속해 있는지를 알아야 편리하다. 일반적으로 족보에는 세거지(世居地)를 표기하기 때문에 만일 파를 알지 못할 경우는 조상이 어느 지역에 살았는지를 확인하여 파를 찾아갈 수도 있다.

2. 시조로부터 몇 세(世) 인지를 알아야 한다. 족보는 횡으로 단을 나누어 같은 세대에 속하는 혈손을 같은 단에 횡으로 배열하므로 자기 세의 단만 보면 된다. 만일 세수를 모르면 항렬자로 세수를 헤아려야 한다.

3. 항렬자와 족보에 기록된 이름을 알아야 한다. 예로부터 가정에서 부르는 이름에 항렬자를 넣지 않았더라도 족보에 등재할 때는 반드시 항렬자를 넣은 이름을 실었으니 이를 알아야 한다.

4. 색인이 수록된 족보의 경우 색인을 이용해 찾을 수도 있다. 이 경우 반드시 족보에 등재된 이름을 알아야 하며, 동명이인이 많을 경우 본인 뿐만 아니라 아버지, 할아버지의 등재된 이름을 알고 있다면 찾기가 쉽다.

실제 사용하는 이름과 족보에 등재된 이름이 서로 달라 찾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요즘은 항렬자와 다르더라도 실제 사용하는 주민등록 상에 등재된 이름으로 등재하는 추세이다.

족보 용어

∙ 자(字) 20세가 되면 관례를 치르는데 식을 주관하는 분이 지어준 이름, 동년배나 친구 등의 사이에서 부를 수 있는 이름

∙ 호(號) 우리나라나 중국에서 본명이나 자 외에 허물없이 부르기 위해 그 대신 쓰는 이름을 통틀어 이르는 말

∙ 아호(雅號) 스승이나 문우들이 그의 인격이나 성품에 따라 지어 부른 별명

∙ 함(銜) 살아 계신 분의 이름을 높여서 부를 때는 함자(銜字)라고 하며, 여기에는 이름자 사이에 자(字)를 넣어서 부르는 것이 예의, 존함은 극존칭임

∙ 휘(諱) 돌아가신 분에 대하여는 휘자(諱字)라고 하며 여기에는 이름자 사이에 자(字)를 넣어서 부르는 것이 예의

∙ 항명(行名) 항렬자에 따라 보첨에 올리는 이름

∙ 호명(戶名) 호적상의 이름

∙ 졸(卒) 죽다(남자의 죽음)

∙ 기(忌) 초상나다(보서에서는 여자의 죽음), 제 지내다

∙ 시호(諡號) 왕과 문무관, 유현(儒賢)들이 죽은 뒤에 그들의 공덕을 칭송하여 나라에서 추증하는 칭호

∙ 사손(嗣孫) 한 가문의 계대의 정통을 이어 받아 온 자손, 종손(宗孫)이라고도 한다

∙ 승적(承嫡) 본처의 적자가 없을 경우 가통(家統)을 승계하기 위하여 서자(庶子)를 적자(嫡子)로 입적함을 이른다

∙ 무후(无后) 계대를 이을 후사가 없을 경우

∙ 미비(未備) 아직 다 가추지 못함

∙ 조요(早夭) 20세 이전에 사망

∙ 묘갈(墓碣) 머리 부분을 둥그스름하게 다듬어 무덤 앞에 세우는 작은 비석으로 죽은 사람의 이름, 세계, 행적, 출생 및 사망의 연월일, 자손의 대략적 상황 등을 새겨 놓음

∙ 세(世)와 대(代) 시조를 1세로 하여 아래로 내려갈 경우에는 세라 하고 자신을 빼고 아버지를 1대로 하여 올라가는 것을 대라고 한다.(고조부를 예로 들면, 대의 경우 : 나 - 0대, 부 - 1대, 조부 - 2대, 증조부 - 3대, 고조부 - 4대 이며, 세의 경우 : 나 - 5세, 부 - 4세, 조부 - 3세, 증조부 - 2세 고조부 - 1세 이다)
 
 

* 신위봉안 (지방모시기)

1.영신 : 먼저 대문을 열어 놓는다.

2.강신 : 제주가 무릎을 꿇고 향을 피운 후 잔을 받아 향불 위에서 세 번 돌린 다음 모사그릇에 세 번에 걸쳐 붓는다. 그리고 나서 두 번 절한다.

3.참신 : 고인의 신위에 인사하는 절차로써 참사자가 일제히 두 번 절한다. 참신 뒤에 제찬을 올린다.

4.초헌 : 제주가 첫 번째 올리는 잔으로 먼저 고위 앞에 올리고 다음에 비위 앞에 올린다.

5.독축 : 초헌이 끝나면 참사자 모두가 꿇어 앉으면 축관이 축문을 읽는다. 축문이 끝나면 모두 일어나 두 번 절한다.

6.아헌 : 두 번째 올리는 술잔으로 원래는 주부가 올린다. 또는 제주 다음 가는 근친자가 올린다.

7.종헌 : 세 번째 올리는 술잔으로 잔은 7부쯤 부어서 올린다.

8.첨작 : 종헌이 끝나고 조금 후, 제주가 신위 앞에 나아가 7부쯤 따라 올렸던 술잔에 세 번 첨작하여 술잔을 가득 채운다.

9.삽시정저 : 첨작이 끝나면 주부가 메그릇의 뚜껑을 열고 숟가락을 안쪽이동쪽으로 가게 메 중앙에 꽂는다.

10.합문 : 참사자가 모두 밖으로 나간다. 단칸방에서는 그 자리에 엎드려 잠깐동안 있다가 일어선다.

11.계문 : 밖에 나갔던 참사자들이 축관을 따라 들어온다.

헌다 : 갱을 내기고 숭늉을 올린 뒤 메 세술을 떠서 물에 말아 놓고 저를 고른다.이때 참사자는 모두 고개를 숙인다.

12.철시복반 : 숭늉에 놓인 수저를 거두어 제자리에 놓고 메 그릇의 뚜껑을 덮는다

13.사신 : 고인의 영혼을 전송하는 절차로써 참사자가 신위 앞에 일제히 두 번 정한 뒤 지방과 축문을 불사른다. 이로써 모든  제사의식은 끝난다.

14.철상 : 제상 위의 모든 제수를 집사가 뒤쪽부터 차례로 올린다.

15.음복 : 참사자가 한자리에 앉아 제수를 나누어 먹는데 이를 음복이라 한다. 음복을 끝내기 전에는 제복을 벗거나 담배를 피워서는 안 된다.

 

 

*제사음식 차리기*

 

1. 장을 볼 때부터 온갖 정성을 다하여 가장 실하고 깨끗하며,

보기 좋은 재료로 준비하여야 합니다. 산사람 먹는 것이야 싼 것을 먹을 수도 있고, 떨이로 파는 물건을 사다가 맛나게 조리하여 먹을 수도 있는 것이지만 내 핏줄의 근간이 되며, 내 육신과 정신이 있게끔 나를 만들어주신 선조에게 그런 불경스런 짓을 생각하는 것은 차라리 제사를 올리지 않는 것만 못합니다. 준비된 재료는 항상 세번 정도 깨끗이 씻어 잔칼을 넣지 않고 조리해야 합니다.

잘게 썰어 먹기좋게 하는 것 보다는 나중에 다시 손을 봐서 음복상에 놓더라도 일단 젯상에 올리는 음식은 큼직큼직한 모양새가 되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2. 과일중에서는 복숭아를 쓰지 않으며, 생선은 꽁치, 칼치, 삼치 등

끝자가 ''자로 된 것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3. 고추가루와 마늘 등 양념을 쓰지 않는다고 되어있으나,

제사음식의 특징인 고추가루만 쓰지 않는다면 나머지 양념들은 무난한 것으로 봅니다.

튀는 색깔과 냄새로 고인의 혼을 쫓아낼 것을 무서워하는 옛날 방법이었으나, 현대에는 고추 가루를 제외한 다른 양념들은 그대로 쓰이고 있습니다.

 

4. 식혜, , 면 등의 제사음식은 국물 없이 건데기만 건져서 놓습니다.

 

5. 조리하는 과정에서 떠들고 웃고 하여 음식에 침이나 머리카락등이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하여야 하며, 특히 고인을 위한 음식인 만큼

먼저 시식을 하는 일은 삼가는 것이 좋습니다.

옛날 어른들은 손주가 먼저 간을 보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귀한 음식을 보고 보채는 어린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에 아이들에게

먼저 한 조각씩 먹이기도 하였으나 핑계거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게 잘못 와전되어 요즘은 젯 상에 올릴 음식 한 접시씩만 남겨놓고는

미리 자기들끼리 모여앉아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제사를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다니 웃다 못해 졸도를 할 일입니다.

 

6. 제사가 들어있는 달에는 부정을 가려야 합니다.

가능하면 상가 집이나 애 낳은 집에는 출입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집안에 초상이 있거나 심하게 우환이 있으면 제사를 거르기도 하였습니다.

지방에 따라서는 부정이 들었을때 제사를 거르기가 죄스러워 자손된 정성의 표현으로 상을 괴지 않고 음식을 모두 조리한 그릇째로 상에 놓지 않고 바닥에 창호지만 깔고 놓아 고인이 응감하기를 빌기도 하였습니다.

*젯 상 차리기 전에 알아야할 것*

 

우선 왼쪽과 오른쪽의 구분은 제관을 중심으로 하며,

동과 서의 구분은 지방이나 신주를 모신 곳을 북쪽으로 가정하고 구분합니다.

이렇게 하면 당연히 제관의 오른쪽이 동쪽이 되며, 왼쪽은 서쪽이 됩니다.

젯상의 진설은 제관을 기준으로 맨 앞줄(과일과 조과류 놓는 줄)의 왼쪽으로부터 시작하여

메와 갱까지의 순서로 진행하며, 양위 합 제시에는 남자를 왼쪽, 여자를 오른쪽에 모십니다.

또한 명절 때나 양위합제의 경우 조상 여러분을 함께 제사드릴 때에는

시저를 신위수대로 올리며, 좌측을 웃어른의 순서로 합니다.

 

*젯 상 차리는 법*

 

정성스레 준비된 음식은 젯상에 보기 좋게 차려집니다.

제관을 기준으로 맨 앞줄에 과일과 조과류를

그 다음 줄에는 반찬류를 놓고 탕류, 적류를 규모에 따라 진설한 다음

맨 윗줄에 메와 갱을 진설하고 시접을 놓습니다.

 

1. 과일을 놓는 줄 : 조 율시이의 규칙을 지키며, 계절에 따른 과일을 쓰기도 합니다.

다식, 유과, 당속 등을 쓸때에는 과일의 양옆이나 가운데에 보기좋게 진설합니다.

 

2. 반찬을 놓는 줄 : 좌포우혜라 왼쪽에 포를 놓고 오른 쪽에 식혜를 놓으며,

삼색나물과 청장, 침채 등을 놓습니다. 물론 고추가루 양념을 쓰지 않아야 합니다.

 

3. 탕을 놓는 줄 : 대개 3탕이라 하여 육탕(고기류), 어탕(어패류), 소탕(두부, 채소류)

세가지 탕을 차례로 올리며, 오탕을 쓸 때에는 봉탕(, 오리류)

잡탕이 추가합니다.

 

 

4. 적과 전을 놓는 줄 : 왼쪽에 전을 놓고 오른쪽에 적을 놓습니다.

3, 5적 등의 구분이 있으나 규모에 따라 정성껏 준비하여 진설합니다.

 

5. , , 갱을 놓는 줄 : ()는 제관이 바라보는 방향으로

왼쪽에, ()은 오른쪽에 올리며 잔은 메와 갱 사이에 놓습니다.

따라서 산 사람이 상을 받을 때와는 반대의 모습이 됩니다.

시저(수저와 대접)는 단위제의 경우는 메의 왼쪽에 올리며,

양위합제의 경우는 중간에 올립니다. 면류는 건데기만 건져 왼쪽에 올리고

()은 오른쪽 끝에 올린다. (, 조청, 설탕 등)을 올리고자 할 때에는

편의 왼쪽에 놓습니다. 설날의 차례 상에는 메 대신 떡국을,

추석의 차례 상에는 메 대신 송편을 올리기도 합니다.

 

6. 축문, 향로, 향합 등을 올려놓을 자그마한 향상을 제상 앞의 정 중앙에 놓고 그 밑에 모사그릇, 퇴주그릇, 제주 등을 놓습니다.

촛대를 젯상의 좌우로 보기 좋게 올리고나면 젯상의 진설은 일단락되는 것입니다.

 

젯상을 진설하는 방법은 지역과 가문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으나

여기서는 가장 보편적이며 기본적인 방법을 소개 하고자 합니다.

어느 고장이든 가문이든 간에 기본적으로 지켜지는 예범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좌포우혜 : 젯 상을 바라보고 왼쪽에는 포를 놓고, 오른쪽에는 식혜를 놓습니다.

2. 어동육서 : 생선은 동쪽에 놓고 육류는 서쪽.

(동쪽은 젯상을 바라보고 오른쪽이며, 서쪽은 왼쪽)

3. 두동미서 : 생선의 머리가 동쪽을 향하고 꼬리는 서쪽을 향하도록 놓습니다.

4. 홍동백서 : 붉은색은 동쪽으로 흰색은 서쪽으로 진설합니다.

5. 건좌습우 : 마른 것은 왼쪽에, 젖은 것은 오른쪽에 진설합니다.

6. 조율시이 : 대추, , , 배의 순서로 과일을 진설합니다. 조율이시도 통용됩니다.